왑띠: 불확실성 앞에서도 창작하기

글: 임승재 (@HavveGo1ucky)
사진: Dhira (
@shotbydhira)

2022년 8월 14일, 한국 인디 음악사에 기록될 만한 공연이 열렸다. 시작은 꽤나 소박했다. “그냥 동아리처럼 내 돈 내고 대관한 다음에 사람들 표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주최자이자 기획자, 그리고 출연진 중 한 명이었던 왑띠의 말에 따르면 '디지털 던(Digital Dawn)'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왑띠는 온라인 음악 커뮤니티에 기댄 점 역시 언급했다. “유튜브 하던 시절에 혼자 음악 만드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엄청 찾아다녔어요. 계속 파다 보니 브로큰티스(BrokenTeeth)를 발견했고, 그다음엔 아시안 글로우(Asian Glow)를 찾았죠. 그리고 파란노을(Parannoul)까지. 당시엔 완전 베일에 싸여 있어서 알긴 알았지만 그땐 연락할 방법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다 잘 풀렸네요.”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도 한몫을 했다. ““밴드를 하고 싶은데 몇 인 이상 집합이 안 되고, 집에서 나가지 못하다 보니까, 그 당시에 이제 학생 신분 이런 사람들이 창작이라도 해보자 그런 시도가 좀 많았습니다. 아마 Asian Glow건 브로큰티스던, 파란노을이든 아마 다 그렇게 시작을 했을 거고요. '디지털 던'은 그 시기에 마침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 모이게 된 행사였죠.” 왑띠 본인에게도 이는 전환점이었다. “음악을 확실히 해야겠다라고 좀 마음먹게 된 계기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앞서 나갔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제가 사실 회사를 그만둔 지가 한 10일 정도 됐어요.” 누군가 ‘뭐 하시는 분’이냐 물으면 어떻게 답할 것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운을 뗐다. “그 전에는 아마 '그냥 회사원입니다'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다시 ‘음악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왑띠의 취향은 꽤나 깊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아티스트'를 묻자, 그는 중국의 이모 밴드 Wish Today 얘기로 시작해 Saoirse Dream과 Plus-Tech Squeeze Box에 대한 설명을 줄줄이 이어갔다. 왑띠가 최근에는 뭘 들었는지 확인하려 폰을 보자 어떤 스트리밍 서비스를 쓰는지 궁금해졌다. “저는 음원을 CD 사서 리핑을 하거나 해서 핸드폰으로 듣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스트리밍 사이트에 없는 음악들이 좀 많은 편이라서.” 충분히 예상 가능하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왑띠와 음악의 인연은 중학생 시절 드럼 레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에는 제가 밴드 음악을 쳐야 됐던 때는 아니고, 드럼을 순수하게 배우러 갔었던 경험이었어요.” 처음으로 끝까지 쳐본 곡은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였다. 거기서부터 당시 좋아하던 J-Pop과 애니메이션 노래들로 넘어갔다. 그러다 결국 일렉 기타를 잡게 됐고, Muse, Radiohead, Dream Theater같은 훨씬 더 넓은 음악적 세계로 이어졌다.

“중학교 때부터 동아리도 해왔고 고등학교 때부터 동아리를 했고 기타를 치면서 대학에서도 계속 놓지 않고 있었거든요. 근데 사실 함부로 집에서 ‘나 음악 배울래요’라고 말하기가 부모님 눈치가 좀 보이잖아요. 사실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환점은 사회복무요원 시절에 찾아왔다. 여유 시간이 꽤 생기면서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올린 곡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앨범까지 내게 됐다. “너무 할 게 없다 보니까 유튜브를 처음 올리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나온 음악들이 반응이 꽤 좋고, 앨범도 내고 하다 보니까, 그냥 취직을 내가 별로 재미없어 하는 쪽으로 가는 것보다는 음악 활동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몸 비틀어 보는 게 좋겠다 싶어서 거기서 시작을 했어요.”

왑띠의 초기 작업물들은 유머 위주였다. 오리지널 캐릭터를 내세운 웃긴 노래와 애니메이션 같은 것들이었다. “초기의 작업물들이 개그물이었잖아요. 음악을 만들려는 목적이 아니고 그냥 사람을 웃기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는 이후의 행보에 아주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사실 꼴에 음악이라고 계속 만들다 보니까 ‘아, 이거 만들 때 이런 부분 이렇게 하면 되겠다’ 라든가, 그런 게 조금조금씩 늘어나서 경험치가 됐어요.”

2021년 3월, 왑띠의 첫 EP ‘남 보여주기 부끄러운 노래'가 공개되었다. “동아리 후배가 저 사회복무요원 할 때 앨범을 냈더라고요.” 그가 설명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까, 사실 앨범을 발매하는 것 자체가 뭔가 되게 복잡하고 어려울 줄 알았는데 ‘쟤도 저렇게 내네? 나도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낼 수 있는 건가’ 싶었어요.”

제목이 곧 내용이다. 왑띠가 이처럼 진솔하고 (때로는 유쾌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건 익명의 힘 덕분이었다. 그는 주변 사람이 자신이라고 유추하기 힘든, 아무 의미 없는 글자 조합인 '왑띠'라는 이름을 골랐다. 이후 레이블 '6v6레코딩(6v6 Recordings)'의 이름에 영감을 준 특유의 얼굴을 한 '노란남자' 캐릭터가 그 부끄러운 짐을 대신 짊어졌다.

첫 정규 앨범 '남 보여주기 좀 더 부끄러운 노래'의 소개글에서 왑띠는 ‘온갖 이야기, 생각들, 그리고 열등감을 ‘10%만 빼내어 유쾌한 척 포장’했다고 적었다. 그는 여전히 그 방식을 고수한다. “너무 노골적이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희극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되는 것처럼 너무 대놓고 노골적이면 사람들이 거북해할 것 같아요.”

이 시기의 곡 중 유독 돋보이는 곡은 '시체'다. 이 곡의 탄생 배경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코로나 때문에 진짜 집 안에 박혀서 인터넷 강의 시간 돼서 듣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생활 패턴도 꼬이고, 밤에 불면증도 오고, 잘 못 나가다 보니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고.” 두 눈을 가린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그는 시간을 훌쩍 건너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느꼈다. “빨리 눈을 감고 똑딱해서 밤이 스킵되고 바로 다음 날 아침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로 썼습니다.”

2021년 11월에 발매된 두 번째 EP Jordan Wants to Play'는 신스팝과 칩튠 쪽으로의 눈에 띄는 선회를 보여주었다. “사실 지금 와서 말하자면 제가 글렌체크를 정말 좋아해요.” 왑띠는 이렇게 얘기를 시작하며, 글렌체크가 2집 이후 힙합 스타일로 노선을 틀었을 때 아쉬웠다는 말을 덧붙였다. 당시 그는 Justice, Daft Punk, Porter Robinson 등에 푹 빠져 있었다. “전자 음악이랑 밴드 사운드가 섞여 있는 거를 그 당시에 엄청 많이 들었죠.” 가사를 영어로 쓴 이유 역시 아주 단순했다. “한국어로 쓰니까 안 어울리더라고요.”

2024년 정규 2집 '우리의 친구 머피처럼'에서는 또 한 번 과감한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미드웨스트 이모였다. 흥미롭게도 이 변화는 앞서 말이 나왔던 Dream Theater에서 시작되었다. “Dream Theater에서 또 다른 거 찾아듣고 찾아듣고 하다 보니까 좀 더 테크니컬한 거로 가서, 숫자놀이 하는 매스 락으로도 가고, 매스 락에서 또, 트윙클 기타(twinkle guitar)라고 하죠, 그런 걸로 넘어갔다가 또 미드웨스트 이모로 넘어가고.”

'디지털 던' 당시 스태프로 일하던 중 만난 드러머 이동겸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분이 이모 음악을 되게 좋아하기도 하고, ‘나중에 이모 밴드 할 거면 저랑 같이 하죠’ 라고 그런 얘기를 했었어가지고.” 훗날 왑띠는 그에게 연락해 이모 앨범을 만들 예정이니 드럼을 부탁한다고 해 함께하게 되었다.

이모 앨범을 만들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갔고, 왑띠는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The Brave Little Abacus처럼 긴 트랙에 서사를 담는 것, 그리고 불싸조 4집 '한(국힙)합'처럼 연주곡을 앨범에 넣는 것 등이었다. 왑띠는 이 목표를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고 느낀다. “2집은 그래도 ‘이렇게 구조를 짜서 요러한 모음으로 만들어야겠다’라는 목표를 정하고 만든 내용이다 보니까 1집에 비하면 퀄리티가 좋긴 해요. 하지만 조금 더 대중적인 곡들이 있었어야 돼요.”

가사 면에서 2집은 전작보다는 더 방어적이었다. “1집 당시에는 얼굴을 까지 않고 익명이니까 그냥 대놓고 공개했는데, 2집은 사실 사람들이 보면 가사가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거에요. 최대한 내가 이 가사를 썼는데 사람들이 뭔 내용인지 모르게끔 유도하고 있었거든요. 절대 사람들이 이거 무슨 내용인지 몰랐으면 좋겠다.” 그는 Cap'n Jazz와 Algernon Cadwallader를 롤모델로 꼽았다. “가사를 보면 진짜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근데 뭔가 느껴지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어떠한 내용에 대해 쓰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 목소리와 알 수 없는 가사에서 뭔가 느껴지는 게 있거든요. 저도 그런 방향을 자꾸 노리고 2집 가사들을 썼던 거긴 해서요.”

 

직접 음악을 만드는 것 외에도, 왑띠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판을 벌리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몇 년 전 디시인사이드 '포스트락 마이너 갤러리(포락갤)'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곳이 진솔한 이야기가 오가는 보기 드문 공간이라는 걸 발견했다. “주로 올라오는 게 순수하게 음악 얘기가 대부분이다 보니까 거기서 앨범 추천도 많이 받고, 자작곡 올려봤는데 사람들 반응도 되게 좋았었죠.”

2021년, 그는 갤러리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명곡(눈줄명)'이라는 대회를 열었다. 가사에 오직 '눈물이 줄줄 흐르는 명곡'이라는 말만 들어가야 한다는 다소 엉뚱한 규칙의 대회였다. 목표는 소박했다. “나 같은 사람 더 있지 않나 했으면 좋겠다.” 이후 2022년 2월부터 '포락갤 컴필레이션'이 시작되어 매년 50곡이 넘는 투고가 이어지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디지털 던'이 열렸다. 뒤이어 2024년에는 '그먼씹 하꼬음악 페스티벌'이 열렸다. 세팅과 사운드 체크를 포함해 20팀의 아티스트가 정확히 20분씩만 공연하고 내려와야 하는 행사였다. 무대 위에 놓인 시계는 3분 빠르게 똑딱이며 심리적 압박감을 주었다. 왑띠는 공연에서 팔려 음료를 수십 캔 사두었으나 공연장 냉장고는 시원치 않았고, 미지근한 음료를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결국은 적자였다.

왑띠는 레이블 '6v6레코딩(6v6 Recordings)'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왑띠는 대외적으로 이 레이블을 '동호회'이자 '크루'라고 설명하고 있다. “처음 만들 때 레이블이 구체적으로 어떤 걸 하는 건지 모르고 만들었어요.” 그의 목표는 그저 1인 음악가들을 모아 소통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규모를 더 키우려 한다. 소속 아티스트들이 단순히 내한하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오프닝 공연에 서는 것을 넘어, 직접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해 함께 공연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2025년 6월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취직해 '밴드마스터'라는 직무를 맡으며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굉장히 많은 것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연주 및 편곡 도움 주기, 합주 밸런스 잡기, 콘솔 조정, 테크니컬 라이더 작성, 아티스트 영상 체크, 음향감독에게 악기 밸런스 전달, 무대 위 돌발상황 대처까지.

“일은 재밌어요.” 왑띠는 덧붙였다. 현장에서 일하며 부산 락 페스티벌 같은 곳까지 쫓아가는 게 좋았다고도 했다. “근데 회사에서 사람을 대하는 게 제가 너무 서투른 것 같아요.” 이 인터뷰가 진행되기 바로 열흘 전 그만둔, 그 직장에 대한 이야기다. 음악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업 엔터 업계에 뛰어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왑띠는 단호히 말했다. “고민을 해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왑띠의 정규 3집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데모 상태 곡들, 깔짝깔짝 진행한 기타 녹음, 대략적인 틀 정도. 그는 '올해 안으로만 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작업하고 있다. 현재 상황을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어떻게 할 지 방향을 못 잡은 상황’이라고 자평하면서도, 목표만큼은 뚜렷하다. “살짝 대중성을 추가한 미드웨스트 이모 트랙을 한 두세 개 정도 넣고 싶어요.” 그는 충분히 가능할 거라 믿는다. “이모 팬들도 실망시키지 않고 돈도 벌 수 있는 그런 음반을 반드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왑띠는 음악을 계속해야만 할까?

“살면서 노래 들을 때가 제일 좋아요. 저는 잡생각도 있고 뭐 좀 안 좋은 일 있어도 좋아하는 노래 들으면 그땐 집중되고, 공연장 가서 음악 듣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물론 이제 좋아하는 일들은 많은데 그래요. 그 중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건 음악을 듣는 건데, 음악을 듣다 보면 1인 음악가들이 그렇듯이 창작자랑 소비자랑 거리가 가깝잖아요. 좋은 음악 듣다 보면 나도 이런 거 만들어서 막 사람들이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고 그래서 음악을 하는 거죠.”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 창작을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느껴져가는 지금 왑띠의 말은 유난히 와닿는다. 57명의 다양한 인디 음악가들의 곡을 왑띠가 엮어낸 Postrockgallery Compilation Vol. 5는 현재 YouTube Bandcamp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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