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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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아랑 (@arang8_)

이재는 서울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전주에서 살다가 상경했다. 오빠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놀던 어린 시절은 자연스럽게 음악 속에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 음악을 만들고, 연주와 노래를 하고, 가사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여전히 놀이이자 삶이다. 2021년 EP 《NOW TRASH》를 발표하며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2024년 EP 《이재이집》, 2026년 5월 정규 앨범 《Purple Trip》을 발매했다. 현재 이날치의 멤버이며, 효도앤베이스와 넘넘 등의 밴드에서도 활동했다.

첫인사 겸 자기소개 한마디 부탁드린다. 밴드 해외 활동 후 막 귀국했는데 어떻게 시간 보냈는지도 궁금하다.

반갑습니다. 이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이날치에서 베이스를 칩니다. 한국에서의 루틴은 12시 전에 잠들고 7시에 일어나 운동을 가거나 훌륭이(이재네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개인 앨범 준비하고 활동하면서 루틴 없이 살았던 기간이 오래됐다. 해외 가서는 모든 루틴이 깨지는 동시에 다시 쾌감을 느꼈고, 그만큼 지금 다시 몸에 빚을 졌다.

해외에서 어떨 때 모든 루틴이 깨지면서 쾌감을 느꼈던 건가?

루틴도 어찌 보면 작은 강박인데, 그 강박이 먹히지 않는 환경에 나를 내던졌을 때 오는 쾌감인 것 같다. 운동도 안 하고, 몸에 안 좋은 컵라면도 많이 먹고, 멤버들과 술도 많이 마시고…

특별히 더 감사한 사람이 있다면?

아무래도 남편(허키 시바세키)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20대의 음악 생활을 거의 남편과 함께했다. 그러다 남편이 될 줄은 몰랐지만…

듣다 보니 이번 앨범 《Purple Trip》의 수록곡 〈뚝딱뚝딱〉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서로 음악 작업하는 모습을 사랑의 시선으로 담아낸 곡이라고 소개했다. 가사에서는 그 모습을 ‘뜨개질’과 ‘기묘한 재료를 쓰는 요리’로 표현했는데, 이 두 가지 이미지는 어떻게 떠올리게 됐는지 궁금하다.

한 7년 전, 음악 만드는 얘기를 하다가 남편이 했던 비유다. 나는 뜨개질을 하듯이 계속 덧붙여 음악을 만들고, 허키는 기묘한 재료들을 섞어보며 음악을 만든다는 표현이 너무 와닿아 메모장에 적어뒀었다. 이번 앨범 작업을 하다가 옛 메모장을 뒤적이게 됐고 남편의 비유가 〈뚝딱뚝딱〉의 가사가 됐다.

낭만적이다. 이능룡의 기타 소리도 매력적이어서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규 앨범을 만들 때는 어땠나. 그 후로 두 장의 EP를 발매했는데, 창작 방식이나 생각 혹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궁금하다.

여전히 그때그때 손에 잡히는 재료들로 뜨개질하는 것 같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밴드에 속해 있었고, 솔로 앨범 생각조차 없던 사람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상처나 화 같은 압력이 생기면 솔로 앨범이 한 장씩 생기더라. 역설적이게도 그렇다. 그 마음들을 정리하려고 하다 보면 앨범이라는 형태로 나온다. 그중 윤기 오빠와 작업한 《이재이집》은 아무런 압력 없는 상태에서 나온 유일한 앨범이다. 나에게는 매우 명상적인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압력과 혼란을 다루는 방식도 달라진 게 있나? 디베이서 매거진은 전에 《Now Trash》를 뉴웨이브 기반으로 포스트펑크 등이 뒤섞였다고 설명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칩튠 사운드와 말하듯 전달하는 보컬이 상대적으로 눈에 띈다.

혼란을 다루는 메커니즘은 똑같다. 그러나 그때그때 내가 주로 듣던 음악, 같이 음악을 만드는 동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는다. 《Now Trash》는 허키 시바세키, 《이재이집》은 김윤기, 《Purple Trip》은 장영규 감독님과 작업을 했다. 현재 주변에 있는 사람이 괜히 내 주변에 있는 게 아니다. 다 어떤 이끌림에 의해 동료가 된다고 본다.

장르적인 것은 별 상관이 없고, ‘누구와 함께 작업했고 무엇을 공유했는가’가 청자가 듣기로는 장르로 구분되는 것 같다. 또 분노와 슬픔 등의 혼란 속에서 쉽게 발견되는 것은 사랑, 치유, 자유 등이다. 이번 앨범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퇴행도 섞여 있는 듯하다. 다 큰 어른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어른도 아이도 아닌 혹은 그 둘 다인 존재가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혼란 속에서 자유를 찾은 건가?

그렇다. 어떤 작가분께서 《Purple Trip》 동화책에 쓰여 있는 ‘자유로워’라는 글자에서 언뜻 ‘죽고 싶어’가 보인다고 했다. 혼란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자유로움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처 입은 이에게 유난히 들려주고 싶은 곡이 있다면 자유롭게 소개해 달라.

《Now Trash》 앨범에서는 〈사랑은 우리의 품안에〉를, 《이재이집》에서는 〈우체통〉을, 《Purple Trip》에서는 〈고장난 마음〉과 〈지구별〉을 만들면서 내가 먼저 위로받았다.

" 저 말고도 당신에게는 많은 천사들이 있습니다. " - 〈지구별〉 가사 중

프로듀서로서 마주하는 장영규 감독님은 어떠셨나. 이날치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로 교류할 때와 다른 모습이나 몰랐던 장점이 보인 게 있나? 연륜 덕분에 특별히 더 잘 풀린 곡이나 해결된 문제가 있는지도 들어보고 싶다.

사실 이날치 작업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취향이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과정도 있었고, 둘 다 Stereolab이라는 밴드를 1순위로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또 내가 이번에 바랐던 건 개러지한 밴드 사운드에서 조금 멀어져 보는 것이었다. 헤드뱅잉이 어울리는 음악보다 가볍게 리듬을 탈 수 있는 댄서블한 음악을 해보고 싶었는데, 장영규 감독님이 그런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타이틀곡인 〈퍼플트립〉과 〈호미니니〉. 내가 스케치한 록 버전에서 벗어나기 정말 힘든 곡이었는데, 감독님이 손을 댄 순간 내가 원했지만 내 능력 밖이어서 못했던 과감한 사운드가 펼쳐졌다. 지금 공연 때 함께하는 Trippers 영입도 감독님의 아이디어였다. 3명의 코러스와 함께하는 공연은 최고의 선택이다.

아직 Trippers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와 함께 구체적인 영입 과정을 들어볼 수 있나? 2026년 블록파티 공연에서 〈뚝딱뚝딱〉의 반복적인 율동을 관객들까지 자연스럽게 따라 했던 걸 보니, 관객들에게도 최고의 선택이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앨범 발매 첫 쇼케이스를 마치고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공연에서 밴드 셋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음악 특성상 편곡이 많이 필요할 것 같고 연주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님이 이번 앨범의 특징이 보컬 레이어가 많으니 코러스들과 함께 공연을 꾸려나가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재미있는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내 기준에서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는 순수함을 잃지 않은 영혼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렇게 10여 년 만에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혹시 요즘 학생들이나 졸업생들 중 함께할 친구가 있을지 여쭤봤다. 고등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지금의 Trippers 멤버들이 모였다. 그 친구들이 합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든 율동들이 관객들에게 더 다가왔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Trippers와의 공연은 최고의 선택인 것 같다. 혼자 무대에 설 일은 앞으로 없기를 바랄 정도로, 그녀들과 함께하는 무대가 너무 즐겁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진 속 Trippers가 펼치고 있는 동화책 앨범의 작가 소개가 떠오른다. 다 큰 이재가 돌아봤을 때 어린 시절 오빠와 연주하던 기억은 무엇을 공유하는 과정으로 남아 있는가? 특별히 이끌리는 기억이 있는가?

많은 둘째들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는 오빠가 하는 건 뭐든 재밌어 보였다. 늘 “나도 해볼래!” 하며 따라 했다. 오빠가 들려준 서태지 음악, 오빠가 사 온 베이스 기타, 오빠가 보던 만화들까지. 함께 듣고 연주하고 보면서 놀았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래서인지 밴드 활동도 늘 즐거웠고, 계획에도 없던 솔로 앨범을 만들고 활동하는 지금도 또 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 어릴 때 우리 오빠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나의 세계를 내 음악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나누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상처와 혼란,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된 여행이 7년 전 남편과의 메모를 돌아보고, 10여 년 만에 고등학교 선생님께 연락하고, 오빠와 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 끝에 지금 순수한 여행자들과 함께 관객들을 만나게 했다. 이런 시간의 역행을 거치고 난 뒤 훌륭이와 산책하며 시작하는 하루의 루틴은 어떻게 느껴지나.

이 질문에서 나는 한 번 더 치유받는다. 이런 과정을 원해서 앨범을 냈구나 또 한 번 상기하게 된다. 시간 역행 후 훌륭이가 더 귀여워 보인다. 훌륭이도 나이를 먹어가고 얼굴 주변이 희끗해지는데 더 귀여워진다. 만물이 다시 보이고 사랑스러운 얼굴들을 마주하게 된다.

작은 강박인 규칙은 쾌감 후에 오는 고통을 어르고 달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다시 루틴 있는 삶을 살다가, 무언가에 꽂혀서 만들거나 투어를 가게 되겠지. 어찌 보면 일상의 루틴이 쾌감과 고통을 견딜 자양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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